요료법의 효과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곧바로 건강에 유익한 요가 왜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는지에 대하여 궁금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생명의 가치에 대한 우리들의 관점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는 2,000년 이상 치료제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플리누스와 갈렌은 그들의 의학 서적에 요에 대한 내용을 기록했습다.
요료법은 모든 질병에 듣는 만병통치약으로서 매우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입니다. 그러나 요가 신체에서 배설되고 있다하여 혐오스럽고 불결한 물질로 여겨져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문명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식인들조차 요료법을 사장시켰습니다.
인도에서는 요료법이 비법처럼 전해져서 힌두교 수도자와 요가 수도자들만이 요를 신성하고 효과적인 약물로 여겨왔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요는 병을 고치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비의 치료제가 세월이 흐를수록 힌두교 수도자와 요가 수도자들 사이에서는 비밀로 간직되었고, 그들은 외부 세계에 요료법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조치를 취하였다.
요료법이 대중으로부터 자취를 감춘 두 번째 이유는 오랫동안 지속된 교회의식이 요료법을 신비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요료법을 경외하고 숭배하였으나 실제의 치료법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요료법은 이런저런 형태로 몇몇의 전문가들에 의해 널리 보급되었고 현대에까지 전해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요료법에 대한 첫 번째 과학적인 연구 결과로 20세기 초에 샤텐 프라오흐 논문, SCHATTENFRAOH’S PAPER(요는 항원이 존재한다)가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항원의 발견에 따른 치료적 탐구에 관한 이야기는 그 논문에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수년이 지난 후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호주, 독일 등에서 요 를 주사하여 치료에 이용했다는 보고서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요료법은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47년 단 한 편의 보고서가 영국 런던에 사는 플레시Plesch에 의해 작성되어 요를 이용한 치료법(Treatment with Urine)이란 논문으로 스위스 의 학 잡지에 매주 연재되었습니다.
요료법에 대한 의학계 사람들의 주된 편견은 요료법이 비자연적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들은 신체에서 배설물로 제거된 물질을 다시 신체 안으로 넣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 다른 반대 의견은 요의 치료 용량이 확실하게 결정되어 있지 않고, 요에 들어 있는 유독한 물질들로 인하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의사들은 돼지의 위나 황소의 고환 같은 동물 시체의 각기 다른 부위들을 주사제나 혹은 경구 투여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장균들이 입으로 투여될 수 있으므로 요료법을 단지 미학적인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입니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으며 자연이 주는 여러 가지 혜택을 잊고 지내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보적인 과학 시대라고 불리는 징후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자연이 주는 신비로운 선물에 의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인도 사람들은 현대 문명의 발달된 이기를 전혀 모르는 채 자연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이용하여 해일과 억센 비바람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며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현대 생활이 가져다주는 유해한 영향들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들의 무지가 주는 혜택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습니.
요료법의 치료 원리는 자연과 밀접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치료법으로서의 요료법은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더욱이 요료법은 어느 누구의 종교적 신앙심에도 흠집을 내지 않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제하는 생활과 순박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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